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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5 [책소개] 대국굴기 - 네덜란드편
2008.08.15 22:46
풍차의 나라, 순박하고 튤립이 만발한 평화롭기만한 이미지로 선입견이 잡혀있는 나라 - 네덜란드.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라 많은 탓에 간척사업이 활발하고, 척박한 농토를 개간하느라 억척스러움이 있긴 했지만, 단지 그 뿐 고도의 산업화와 표준화,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나라였다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는 19세기 초까지도 옛 독일 (도이치왕국)과 프랑스, 에스파냐 등의 지배를 번갈아 받던, 정치,군사적으로는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국기 안의 문구처럼 "끊임없이 투쟁하라"는 정신이 흐르고 있었고, 이는 17세기 에스파냐, 포르투갈보다 큰 무역국가, 농업국가를 이루게 된다. 17세기 네덜란드 선박의 운송량은 영국, 독일, 프랑스의 운송량을 합한 것보다 많았고,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해서 동방무역을 장악하기도 했다. 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인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도 세워서 현대적인 금융시장을 열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네덜란드가 근대 유럽경제를 이끈 주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내가 보는 네덜란드의 굴기의 배경은 한 마디로 "표준화"이다.

첫번째 표준화는 청어잡이이다.

14세기 네덜란드는 청어잡이가 국가의 기간산업이었는데, 이렇게 된 배경은 국가적인 표준화에 기인한다.

작은 어촌마을의 어부가 발명한 "단칼에 청어내장을 제거하는 방법"을 널리 알려 전문가들을 길러내었고, 숙련공들은 1시간에 약 2천만리의 청어내장을 발라냈다고 한다. 또, 오늘날의 수협 격인 "대어업위원회"는 의회로부터 법적인 권리를 부여받아 체계적인 청어산업을 관리감독했고, 이 기구는
- 청어의 포획시기,
- 가공상품중량 및 포장방법, 포장규격
- 품질기준
- 청어를 절이는 데 쓰이는 소금의 량
- 절인 청어를 넣는 나무통의 재질과 크기
- 완성가공품의 중량
등 엄격한  규격과 표준을 정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관리감독, 승인기구를 두었다.

이리하여, 17세가 중반 네덜란드의 추정 청어포획량은 연간 3만2천톤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유럽 전체의 약 6만톤과 비교했을 때 거의 절반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이룰 수 있었다.

두번 째 표준화는 플류트선이라고 하는 운반선인데, 오늘날로 치면 컨테이너선의 발명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플류트선은 갑판이 좁고 길며, 선창이 넓어서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운송선이었다. 그러나, 돛이 매우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가벼워서 속도면에서도 이점이 있었다. 보통 플류트선 한 척의 적재용량은 약 250t ~ 500t  이었고, 저중심 설계라 출발 및 정지가 쉽고 폭풍우 같은 악천후에도 잘 견디었다.

이런 이점으로 발트해에서 다른 나라 선박이 1번 왕복할 동안, 네덜란드의 플류트선은 2번 왕복할 수 있었고, 승선인원이 보통 9-10명으로 영국의 동급선박의 30명에 비해 저렴하게 운행할 수 있었다.

이런 장점을 가진 배를 대량 건조하기 위해서 조선소의 설비와 자재, 계측장비등을 표준화하여 저렴하고 빠르게 건조할 수 있었다.

세번째는 근대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했다는 점이다.

발트해 해상무역을 장악하여 대규모 경제시스템을 확보한 네덜란드는 이런 경제시스템을 굴리기 위해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설립시기는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2년 정도 빨랐지만 (1600년), 근대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확립이라는 면에서 보면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더 빠르다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국가자본과 몇몇 귀족들의 자본으로 한정된 프로젝트에 각각의 책임으로 자본을 운영하는 현대로 치면 "프로젝트파이낸싱" 혹은 "유한회사"의 그것과 유사한데 비해,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소액주주들의 참여, 거래소를 통한 유동성의 확보와 시장거래개념, 단일프로젝트 (한 번 인도까지 다녀오는 원양항해)에 대한 투자가 아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주식회사에 상당히 근접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선진화된 금융시스템을 바탕으로 설립된 동인도회사는 영국의 설립자금보다 10배가 넘는 대규모의 경영을 할 수 있었다.

은행에서는 "신용거래"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여, 신용도에 따라 이자율을 달리 적용하는 등 신용있는 회사들이 저비용으로 차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저금리자금은 영국 등 다른 나라의 상인들에 비해 유리하게 작용하여 대규모의 무역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표준화와 이를 위한 국가의 지원으로 네덜란드는 늦깍이 대항해시대 제국이었지만 선발주자였던 에스파냐, 포르투갈보다 더 큰 이득을 챙기고 오늘날의 네덜란드가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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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inmaker